소중한 일상 이야기

3개월 정도 걸어다닌 적이 있었다.

봄빛햇살23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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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시험 준비를 한다고 3달 정도 걸어 다닌 적이 있었다. 가족들의 가난이 아니라 내 가난이 있었기에 나는 걸어 다녔다. 솔직히 버스 타고 다니기에도 너무 애매한 거리였다. 버스 정거장으로 3개의 정거장만 타고 가는 거리라 안 타기에는 멀고 타기에는 너무 가깝고 참 애매했다.

성경책에도 나오지 않는가? “하나님 저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맛나를 구하는 인간. 그 끊질긴 배고픔으로 나는 대학교 급식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교 도서관 열람실을 매일 다녔다. 물론 주말은 쉬었다. 그때 나는 주일에는 쉬어야 하는 기독교인이었다. (지금은 종교생활은 접었다.) 여담이지만 취업시험이나 무슨 시험에 도전하는 분이라면 종교생활을 강추한다. 종교생활을 하면 꾸준한 기도로 목표를 잊지 않고 끈기 있게 갈 수 있게 한다. 또한 주말에 교회라는 공간에 가서 집단적으로 기도를 하면서 일주일 동안 멍 때리면서 공부한 걸 반성하게 하고 마음의 짐을 벗고 새로운 에너지로 월요일 다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시험공부라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휘발되는 뇌 속에 시험범위를 계속 채워 넣어줘야 하는 작업이니깐. 문제를 풀면 맞춰서 점수화가 되어야 하는데 ‘어제 봤는데 또 틀리냐?’ 이상하게 시험공부를 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내가 종교생활 안했으면 3개월이라는 기간 끝까지 완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취업 시험은 5월이었기에 2월 3월 4월까지 한 3달 동안 같은 생활을 계속했다. 월 ~ 금요일까지는 아침 일찍 대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맡고 오전 공부, 점심 먹고, 오후 공부, 저녁 먹고 걸어왔다. 특별히 집에 가도 먹을 것이 없었기에 머리 비우고 주는 밥 먹는 게 좋았다.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이 인간이다. 졸업하고도 모교에 가는 것이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다른 대학교 도서관에 갔다. 물론 모교 도서관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 취직 못하고 대학교 도서관 왔다갔다하는 것이 쫌 그랬다. 맘 편히 날 알아볼 사람이 전혀 없는 다른 대학교 도서관을 다녔다.

 

아침 일찍 가야 도서관에 좋은 자리맡을 수 있었다. 좋은 자리라고 하면 다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중앙에 히터 나오는 곳 피하고 사람들 왔다갔다하는 산만한 자리 피하고 뭐 내가 주로 앉는 익숙한 자리가 있다. 과일 대충 챙겨 먹으면서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걸어 다니는 데 별별 생각이 다 든다. 20대 중반 꽃다운 나이에 걸어 다니는 게 어떤 느낌 인지 아는가? 다른 애들은 남자친구가 자가용으로 모시러 오는 애도 있더라~ 20대 한창 이쁠 때인데 이쁘게 꾸미고 데이트나 하고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그런 욕구보다 자립의 욕구가 더 컸던 것 같다. ‘번듯한 직장을 잡아서 평생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살고 싶다.’라는 욕구 말이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이 있었다. “외로운 것도 에너지다.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는 말자.” "난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니깐 외로운 에너지도 다 끌어 모아서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말이다.

 

5차선 큰 도로변의 도보를 걸어본 사람을 알꺼다. 차 지나가면 더 바람이 세게 분다. 차 지나갈 때마다 흑 먼지와 바람이 더 쌩쌩 분다. 그래서 2월 달에는 버스타고 다녔고 날씨가 점점 좋아지는 3월, 4월은 내내 걸어 다녔다. 4월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춥지 않고 약간 따뜻하고 걷기 딱 기분 좋은 저녁 공기다. 꽃들도 만개하고 만물이 소생하는 그런 온도. 4월에 쫌 늦게 일어나서 오전 날씨 좋을 때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은 쫌 비참하다. 대학 새내기들의 청춘들과 뒤섞여서 머리 질끈 묶고 칙칙한 운동복 입고 걸어가는 나라니. 차라리 아침 일찍 걸어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걸어다녔던 시절의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기록해 두고 싶었다. 매일 도를 닦듯이 걸어다닌 시간. 하루 꼬박 1시간 15분은 걸어다니느냐 강제 운동을 했다. 그때 미세먼지 심했을 지도ㅠ 옆에서 버스 지나가면 흑먼지 날리고 그 먼지들 먹으면서 걸어다녔으닌깐..... 지나고 나니 머리 비우기에는 걷기보다 좋은 운동은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복잡한 일이 있으면 몸을 쓸려고 한다. 내가 하정우보다 걷기에 대한 에세이를 먼저 썼어야 하는데... 나도 걷는 거 얘기하자면 여러 가지 글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ㅋㅋ 지금이라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때는 정말 그것 밖에 길이 없었는데, 딱 3개월만에 끝나서 다행이었던 내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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